운명이다....
무력감과 막막함, 요즘 많이 떠오르는 단어이다. 그래서 슬프다.
원칙으로부터 너그럽게 대하지 못했던 그래서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그래서 치열하게 살아온 분이 외롭게 사라져 가셨다.
이 책을 읽기까지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읽는 동안 분노와 울분으로 수 없이 많이 책을 덮어버렸다. 예상만큼이나 힘들었다.
지금도 진행형이다.
국민의 알 권리가, 국민의 자유가 권력으로부터 유린당하고 있는 지금, 당신이 간절히 그리워집니다.
2012년 12월 19일 이후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가장 아슴 아프게 남는 부분을 인용한다.
....
나는 백범 김구 선생을 존경했다. 김구 선생은 민족의 해방과 통합을 위해 목숨을 빼앗기는 순간까지 뜻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했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우리 현대사의 존경받는 위인은 왜 패배자뿐인가? 우리 역사는
정의가 패배해 온 역사라는 말인가? 정의가 패배하는 역사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에게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일인가? 나는 남북전쟁 종식을 눈앞에 두고 했던 링컨 대통령의 두번째 취임 연설문을 읽으면서 '정의를 내세워 승리한
사람'을 발견했다. 링컨은 선거에서 숱하게 떨어졌다. 대통령 재임중에는 누구보다도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노예제 폐지론과
노예 소유자들이 모두 그를 공격했다. 인기도 없었다. 그러나 링컨은 내전에서 패한 남부를 적으로 몰아세우지 않았다. 남과 북을
선과 악으로 갈라치지도 않았다. 승리니 패배니 하는 말도 쓰지 않았다. 정의와 평화, 연방의 통합을 위해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말자고, 모든 이를 사랑하자고 호소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노예제 페지와 연방의 통합, 둘 모두를 이루었다.
링컨의 연설문을 읽으면서 새로운 깨달음과 위안을 얻었다. 역사를 보면 정치인들이 집단적 불신과 적대감을 부추기는 곳에서는
언제나 불행한 일이 생겼다. 나는 지역 분열주의를 극복하고 국민 통합을 추구하겠다는 목표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뿐이다. 상대
후보와 싸우지 않았으며 부산 시민과 싸우지도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을 달랬다. 앞으로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물으면
링컨 대통령이라고 대답하기로 결심했다. 링컨 대통령은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 준 겸손한 지도자였다.
....
나는 그 신문들과 끝없이 싸웠다. 그들은 몇 백만 부의 발행부수로 표현되는 막강한 미디어의 힘으로 나를 공격했다. 논리의 힘, 사실의 힘,
진실의 힘이 아니었다. 그러난 나는 그 싸움에서 대통령의 권력을 무기로 쓰지 않았다. 국민이 언론과 싸우라고 그 권력을 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인의 권리, 시민의 권리만 가지고 싸웠다. 그렇게 해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는 한,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싸움이었다. 그렇게 믿었기에 패배했지만 끝까지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
가장 막강한 권력은 언론이다. 선출되지도 않고 책임지지도 않으며 교체될 수도 없다. 언론은 국민의 생각을 지배하며 여론을 만들어 낸다.
그들이 아니라고 하면 진실도 거짓이 된다. 아무리 좋은 일도 언론이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