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배우기/전시회

오드리헵번사진전 (Audrey Hepburn) Majestic Love

m지니 2016. 8. 6. 10:31

은연중에 내 뇌리에 담아둬서 영향을 미쳤을테다, 짧은 여행 일정지에서 가까운 곳에 전시회가 있었다.

천안예술의전당의 위치가 접근성이 그리 좋지 않아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힘겨웠을 것이다.


오드리헵번사진전

숭고한 사랑

2016 7.12 ~ 8.28(일) 까지 관람 가능 (무료)

천안예술의전당 미술관


서울 전시회는 미리 알지 못해서 보지 못했지만 천안 전시회는 놓치고 싶지 않아서...

1층과 3층 두 개 분리된 전시관에서 진행하며

평일이라 그런지 꾸준한 관람객이 있었지만 조용하고 차분한 관람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미술관 전시회엔 오드리헵번 사진전 외엔 없다)

약 1시간 ~ 1시간 30분 정도면 오드리헵번 일생, 영화, 말년의 활동을 충분히 감상하고 그녀를 더욱 알게될 수 있을 것이다.


천안예술의전당 공연장으로 진입하게 되면 찾기가 조금 버거울 수 있다.

좌측은 테마워터파크라 사람들과 차가 붐비고

예술의전당 공연장은 현재 공연이 없어 잠겨 있으며

미술관은 공연장을 나와 윗 쪽으로 올라가야 된다.


오드리헵번 전시관 안내데스크 위 예쁜 브로슈어... 

외모 보다 더 아름다웠던 그녀의 삶을 이번 전시회로 더욱 자~알 알게 되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전시회를 알게되었고

이 전시회를 계기로 페친인 임정도 작가분께 경의를 표한다.

(사실, 실제 만남은 없었고 페친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며, 이번 전시회 때 만날 수도 있게다 싶었는데... ㅠㅠ 그러지 못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오드리헵번 전문가임이 틀림 없을 것이다.

오드리헵번 피규어 작품들이 많았으나 첨엔 하나 하나 촬영하다

반 정도는 찍지 못했다.



오드리헵번의 삶은 역경의 시작이었으며 그녀의 짧은 삶 자체가 도전과 희생의 삶이었던 것 같다.

1929년 5월4일 ~ 1993년 1월20일, 63년의 짧은 생

1929년 5월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오드리 캐틀린 리스턴이 태어난다.

어머니 엘라의 두 번째 남편인 조셉 헵번 러스턴과 결혼을 통해 태어났으며

나중에 아버지 미들네임인 헵번을 붙히게 된 이유는 아버지 외가쪽이 공작 출신임을 감안해서

오드리 러스턴에서 오드리헵번으로 이름을 변경하게 된다.

오드리헵번의 어머니인 엘라 또한 네덜란드 귀족 집안이었다.














5살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어린 나이에 2차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순탄치 않았던 오드리헵번의 삶을 옅볼 수 있는 그녀의 말이다.


"나의 커리어는 미스터리다.

내가 영화에 출연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 했고

이렇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일을 시작하던 첫날부터 놀람의 연속이었으며

이 모든 일이 현실이라는 것이 아직까지 믿어지지 않는다."



5살 때부터 기숙사에서 발레로 시작해서

배우로...






내 기억 속 오드리헵번과의 첫 만남은 "로마의 휴일" 이었다.

발랄하고 때론 말괄량이 같은 공주 역을 했던 그녀의 매력에 매료되어....

내 인생에 한 번쯤 경험하고픈 ㅎㅎ


















아이러니하게

오드리헵번은 자기 자신을 한 번도 예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당시 미의 지향점이었던 글래머러스한 이미지와 상반되었으니...

깡마르고, 각진 얼굴, 얼굴에 비해 너무 큰 눈...


하지만 '사브리나' 란 영화를 통해 "헵번 룩"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다.









오드리헵번이 수 많은 어린이와 사람의 생명을 구한 유엔국제난민기구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선택한 영화 "파계"









"티파니에서 아침을"

파라마운트 제작자들의 만류로 마를린몬로 대신 오드리헵번이 캐스팅 되었다.

이 영화로 인해

뉴욕 티파니 매장, 문리버(Moon River) 가

유명세를 탔다.





한 손엔 베이글(?), 한 손엔 커피...

얼굴 반을 가릴 듯한 큰 선글라스를 쓰고 쇼윈도우를 쳐다보는 명장면!

상상해본다!

이 얼굴 대신 마를린먼로...

오드리헵번과 상반된 마를린먼로의 이미지라

이미 오드리헵번으로 굳혀진 이미지라 가히 상상하기가 무섭다. ㅋ












이 영화 "Away" 를 끝으로 오드리헵번은 은막을 완전히 떠난다.

이 영화에서 받은 개런티 전액을 유니세프에 기부한다.




좋은 카메라였지만 촛점이 흔들려 작품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ㅠㅠ

수전증인가 ㅠㅠ

























오드리헵번은 마지막 여정인 소말리아에서 참혹함을 보고 바로 런던에서 유니세프 기자회견을 연다.

오드리헵번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순간엔 당대의 아름다운 스타처럼 회견장을 밝게 비추었다고 한다.

그 조명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을 때는 나이을 먹었어도 아름다웠던 그녀는 없어지고,

초췌하고 아프리카 난민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은 슬픔에 잠겼고, 회견장에서는 흐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저는 악몽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에티오피아와 방글라데시에서 기근을 봤었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습니다.

제가 상상한 것 보다 훨씬 나빴습니다.

저는 이런 광경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 광경은 차마 이야기 하기가 어렵네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오드리 헵번은 눈물을 흘렸다.















이땅의 설렙들이 명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드리헵번의 삶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녀의 활동이 더욱 왕성했을 것이며, 어둠 곳곳에 빛이 되었을 것이다.

외면의 아름다움 보다 그녀의 삶이 더욱 아름다웠기에 오드리헵번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아름다운 얼굴에 파인 주름을 두고,

웃음 선이라고 당당히 말했던 오드리 헵번!

영화 기술이 발달하고 아름다움을 만들(가공)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오드리 헵번 그녀가 더욱 그리워 지는 것은 왜일까?